어쩌다 문득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.

 

 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 속, 푸른 밤하늘의 작은 별들처럼...

 

 

 

0.

 유치원 때 말이지.

 

 선생님이 남자 여자 두 줄 쭉 세워놓고 그러더라고.

 

 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 잡아서 짝 하래.

 

 그래서 난 젤 예쁜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.

 

 하, 근데 말야. 세상일이란게 만만치 않아.

 

 특히나 남녀관계에 있어선 말이지.

 

 온갖 협잡과 권모술수가 팽배한단 말야.

 

 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냐고?

 

 그냥 잘난 놈이 그녀를 채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지.

 

 별 수 없잖아. 난 볼 품 없으니...

 

 마지막 되니까... 못 생긴 여자애 2명이랑,

 

 나를 포함한 찌질남 3명 남아 있더라.

 

 그런데 못 생긴 여자 중에서 그나마 좀 나아 보이는 애가,

 

 갑자기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 오더니 내 손을 낚아채는거야.

 

 '어랍쇼? 쬐끄만한게 남자 보는 눈은 있어 가지고.'

 

 이러고 치웠단 말이지.

 

 근데 다음 날 말야. 걔가 나한테 '베티붑' 저금통을 선물하더라.

 

 애들이랑 선생님까지 나서서 우리 둘을 둘러싸고 

 

 축복하듯이 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며 기립박수 막 치고...

 

 난 벙 쪘지. 그 땐 어려서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고, 그저 엄마만 좋았거든.

 

 그리고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그런 봄날은 없었지.

 

 지금의 난 진심으로 그 아이에게 사과하고 싶어.

 

 시내 한복판에서 알몸에 브리프만 걸친 채 두 무릎을 꿇고,

 

 그녀의 발등에 키스하며 눈물의 회개를 하고 싶어...

 

 "내가 잘못했다, 사과할게. 미안합니다.

 

 이걸로 내 과오를 청산할 수 없다면...

 

 어떻게 화, 화려한... 똥꼬쇼라도?"

 

 

1.

 어린 시절 난 늘 혼자였다. 아버지랑 엄마가 일을 가고 나면 집에는 날 반겨 주는 이가 없었다.

 

 유치원에 다녀오면 윗 집에 살던 누나가 늘 내 밥을 차려주고는 했었다.

 

 그 누나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...

 

 아마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있겠지. ㅎ

 

 

1과 1/2.

 학원에 갔는데 희멀건하게 키 큰 녀석이 하나 있었다.

 

 자기 꿈은 화가란다.

 

 7살짜리가 페라리 문양의 말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면서,

 

 크레파스로 백마를 그리고 있었다.

 

 '아, 이게 천재란거구나...' 라고 생각했다.

 

 지금쯤 그 아이는 화가가 되었을까, 그냥 회사원이 되었을까? 

 

 

2.

 시골로 이사를 왔다.

 

 이곳은 어린 나에게 무척이나 낯선 공간이었다.

 

 늘 콘크리트 바닥과 벽에 둘러쌓여 살아왔었는데...

 

 여기는 사방을 둘러봐도 푸른색밖에 보이지 않는다.

 

 내 또래도 보이지 않는다.

 

 그런 나에게 유일한 친구 하나 있었으니,

 

 주인 집에서 키우던 믹스견 한 마리였다.

 

 덩치는 산만한데, 얼마나 순한지 항상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면서

 

 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그런 개였다.

 

 걔는 나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.

 

 나도 걔한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.

 

 어린 내 두 손으로 물만 떠다 줘도

 

 열과 성을 다하여 내 두 손을 핥아주었다.

 

 그 투박한 혀를 통해 내 손에 느껴지는 온기가 그렇게나 좋았다.

 

 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.

 

 저녁에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야밤에 개도둑이 훔쳐갔단다...

 

 나는 그날 저녁,

 

 텅빈 개집과 덩그러니 남아있는 쇠밥그릇 앞에서

 

 한참을 서럽게 울었더랬다.

 

 

3.

 쌍둥이 자매가 있었다.

 

 지들이 말하길 이란성 쌍둥이란다.

 

 둘 다 선머슴 스타일이지만,

 

 굳이 따지자면

 

 하나는 여우상에 한결 계집같이

 

 느껴지던 좀 새침한 '선자(先子)',

 

 다른 하나는 강아지상에 사내같이

 

 털털하던 좀 우둔한 '후자(後子)'

 

 아니다,

 

 선자가 후자였나, 후자가 선자였나...

 

 아무튼 둘 다 나보다 한살 많았다.

 

 걔들도 지금은 아줌마겠구나.

 

 그나저나 작명 센스하고는...

 

 아저씨, 그래도 여자애들인데 신경 좀 써주시지...ㅠㅠ

 

 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

 

 '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!?'

 

 라는 커다란 간판이 걸린 곳이 있다.

 

 

4.

 뒷 집에 선머슴 같은 누나가 이사왔다.

 

 외동딸인데 이름이 '소희' 란다.

 

 사내같은 짧은 숏컷헤어에,

 

 망아지만한 덩치를 자랑하며 늘

 

 동네 사내 아이들이랑 놀던 누나였다.

 

 지금 생각해보면 이름은 '소희'인데,

 

 생김새는 개그맨 '정찬우'를 닮았던 것 같다.

 

 어쨌거나...

 

 우리가 그토록 '소똥'이라 놀려대던 그 누나는

 

 정말 착한 사람이었다.

 

 아스팔트 위에 로드킬 당해 배 밖으로 창자를 드러내며

 

 죽어있는 강아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펑펑 울던

 

 선하디 선한 사람, 그런 착한 '소희'누나.

 

 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...

 

 

 

- 그리운 사람들아, 그대들도 가끔씩은 내 생각을 할 때가 있는가.

 

 나는 그대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잘 살고 있다. 응? 뭔소리여? -

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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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精神一到何事不成 HOGU BOSS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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